세무조사 대응을 하다 보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봅니다.
조사관이 자료를 요구합니다. 대표님은 성실하게 찾아서 냅니다. 그러면 또 요구합니다. 또 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되십니다.
"이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5년 전 일인데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대표님이 불리해집니다. 증명하지 못했으니 인정한 것처럼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애초에 대표님이 증명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세무조사와 그 이후 불복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이걸 알고 조사를 받는 것과 모르고 받는 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1. 원칙 — 과세요건사실은 과세관청이 증명합니다
세법에는 입증책임을 정한 명문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판례로 정리되어 있는데, 원칙은 분명합니다.
과세처분의 근거가 되는 사실은 과세관청이 증명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이 원칙을 유지해 왔습니다(대법원 1984. 7. 24. 선고 84누124, 1986. 10. 14. 선고 86누134 등).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쪽이 그 근거를 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해 보이지만, 조사 현장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2. 조사관이 증명해야 하는 것
판례로 정리된 것들 중 실무에서 자주 걸리는 항목입니다.
| 쟁점 | 증명할 사람 | 근거 판결 |
|---|---|---|
| 과세원인과 과세표준 금액 | 과세관청 | 84누124, 86누134 |
|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전제인 시가 | 과세관청 | 2003두12493, 2005두3059 |
| 거래관행상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점 | 과세관청 | 2011두22075 |
| 그 비용이 가공경비라는 점 | 과세관청 | 2003두10343 |
| 소득이 누구에게 현실적으로 귀속됐는지 | 과세관청 | 98두16347 |
이 표에서 가장 중요한 줄은 시가입니다.
가족이나 임원에게 주식이나 부동산을 넘긴 거래를 두고 "싸게 넘겼다"고 문제 삼으려면, 얼마가 시가인지를 과세관청이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대표님이 "이게 적정한 가격입니다"를 먼저 증명하실 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렇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가격이 적정하다는 근거를 주세요." 그러면 감정평가서를 새로 받고, 비교 사례를 모으고, 몇 주가 지나갑니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3. 반대로, 대표님이 증명해야 하는 것
물론 전부 과세관청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쪽도 분명합니다.
| 쟁점 | 증명할 사람 | 근거 판결 |
|---|---|---|
| 필요경비·손금이 실제 지출됐다는 점 | 납세자 | 91누10909 |
| 가공경비가 사외로 유출되지 않았다는 특별한 사정 | 납세자(법인) | 2010두14329, 2014두4146 |
| 증여추정을 깨는 반증 | 납세자 | 2003두10732 |
| 명의신탁에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다는 점 | 납세자 | 94누6222 |
대법원이 든 이유가 설득력 있습니다. 필요경비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는 대부분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91누10909). 누구와 식사했는지, 무엇에 썼는지는 대표님만 알고 계십니다. 과세관청이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용 쪽은 대표님이 증명하시는 게 맞습니다. 카드 이야기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업무 관련성은 쓰신 분이 설명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줄도 오너 대표님께는 중요합니다. 가공경비라고 인정되면 그 돈이 회사 밖으로 나갔다고 보아 대표자 상여로 처분됩니다. "회사 안에 있다"고 하시려면 그 특별한 사정은 법인이 증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막히면 법인세에 대표님 소득세까지 붙습니다.
4. 이 구분이 실전에서 만드는 차이
법리를 아는 것과 조사에서 쓰는 것은 다릅니다. 실무에서 갈리는 지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요구의 성격을 먼저 분류합니다. 자료 요구가 들어오면 "이건 비용 쪽인가, 과세요건 쪽인가"를 구분하십시오. 비용 쪽이면 빨리 내는 게 유리합니다. 과세요건 쪽이면 "어떤 근거로 그렇게 보시는지 먼저 알려주시면 그에 맞춰 준비하겠습니다"가 정상적인 대응입니다. 거절이 아니라 순서를 맞추는 것입니다.
둘째, 없는 자료를 만들지 않습니다. 증명하지 못하는 것과 없는 자료를 소급해서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는 조사 쟁점을 하나 더 만들고, 최악의 경우 조세범칙으로 넘어갑니다. 증명하지 못하는 항목은 차라리 인정하고 넘어가는 편이 전체 결과가 좋습니다.
셋째, 말이 증거가 됩니다. "관행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요" 같은 답변은 그 자체로 조서에 남습니다. 앞서 계열사 거래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마디로 세액이 자릿수 단위로 달라지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5. 다만, 법리대로만 가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그럼 버티면 되겠네" 하시면 곤란합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입증책임 법리는 심판·소송 단계에서 결론을 가르는 기준이지, 조사 현장에서 협조를 거부할 근거가 아닙니다. 조사관이 요구한 자료를 원칙만 들어 거부하시면 조사 기간이 늘어나고, 조사 범위가 넓어지고, 쟁점이 더 생깁니다. 그 비용이 다툴 세액보다 클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선은 이렇습니다. 있는 자료는 빠르게, 정리해서 냅니다. 없는 자료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과세관청이 증명해야 할 사항"을 대표님이 떠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구분을 조사 초기에 세무대리인과 맞춰 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 더. 조사 단계에서 졌다고 끝이 아닙니다. 입증책임 법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곳은 오히려 심판청구와 소송입니다. 조사 현장에서는 조사관의 판단이 앞서지만, 심판원과 법원은 "그래서 그 시가는 누가 증명했습니까"를 묻습니다. 조사 단계에서 남겨 둔 기록이 그때 쓰입니다.
세무조사는 성실함으로 이기는 자리가 아닙니다. 무엇을 증명해야 하고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아는 것이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그걸 언제, 어떤 순서로 말하느냐입니다.